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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와이드]'신부수업 리허설' 의욕에 찾은 전통시장

'추석 장보기' 여기자가 간다

발품 파는 만큼 쌓이는 情… "에누리는 덤이죠"
입력 2014-08-28 22:07
지면 아이콘 지면 2014-08-2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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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의 한 전통시장에서 생선 등 제수용품을 시민들이 구입하는 모습. /하태황기자
새 상품 손질 하느라 바쁜 지동시장
빠뜨린 물건 꼼꼼히 챙겨 주던 상인
만들어 파는 파전·식혜 '할머니 손맛'
한개 더 얹어주는 푸근한 인심 '훈훈'


"아이고, 이 아가씨 아무 것도 모르고 무작정 왔구먼?"

늦여름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28일 오후, 추석 연휴를 일주일가량 앞두고 수원 '지동시장'을 찾았다.



제수용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불량 딸(?)이지만, 신부수업을 미리 받는다고 생각하니 의욕이 넘쳐 수첩과 펜까지 꺼내들고 장보기에 나섰다.

추석을 앞둔 시장은 평소보다 더욱 활력이 넘쳤다.

새로 들여온 물건을 종류에 맞게 분류하거나 손질하느라 상인들은 손님맞이도 못할 정도로 바빴다.

분주한 시장 분위기가 그리 싫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일 먼저 들른 곳은 과일 상점.

'차례상엔 무조건 크고 잘생긴 놈!'을 속으로 외치며 가장 큰 사과와 배를 보여달라 주문했다.

전북 장수산 사과는 개당(400g) 4천원, 3개를 한번에 사면 1만원에 구매할 수 있었다.

조금 더 크고 매끈한 사과 10개(5kg)를 4만5천원에도 판매하고 있었지만, 낱개로는 팔지 않아 어쩔 수 없이 3개 1만원짜리를 선택했다.

안성 배는 850g짜리를 개당 5천원에 팔고 있어 3개를 구매했고, 경북 김천산 거봉은 3송이(2kg)가 담긴 1박스를 1만2천원에 샀다.

'차례상에서 단감도 본 기억이 나는데…'라며 자신없게 중얼거리자 지금 사놓으면 무르기 때문에 일주일 있다가 다시 오란다.

대추와 밤은 아직 나올 때가 아니라 들여놓지 않았다며 추석이 임박했을 때 감과 함께 사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고흥청과 박진수 사장은 "요즘은 조상님들께 음식을 바친다는 의미보다, 가족들이 다같이 모여 먹고 싶은 것을 사는 추세라 참외나 멜론도 많이들 사간다"고 말했다.

과일가게 바로 옆 떡집에선 송편과 녹두편은 물론 산자와 유과, 약과도 팔고 있었다.

송편은 8~10kg에 10만원, 녹두편은 3장에 1만원에 각각 살 수 있었다.

조청산자는 180g 한 봉지에 4천원, 유과는 160g에 3천원, 약과는 3개 1천원이면 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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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포는 떡집 맞은편 건어물 도소매점에서 살 수 있었다.

러시아산으로, 크기에 따라 세 종류가 있었지만 너무 작지 않은 것으로 골라 50g가량 되는 황태포를 5천원에 구입했다.

소고기는 산적용, 탕국용 두 용도에 맞게 각각 샀다.

가격은 산적용과 국거리용 모두 국내산 1등급으로 600g에 1만8천원씩 판매하는데, 산적을 3장 만들려면 900g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조기를 사러 간 수산물 상점에선 "큰 놈 한마리만 올려도 되고 작은 놈 세마리를 올려도 된다"고 안내했다.

200~300g짜리는 3마리에 1만원, 500~700g짜리는 1마리에 7천원인데 3마리에 2만원에 내놓고 있어 '작은 놈' 3마리를 1만원에 사기로 했다.

베테랑 주부 아주머니들 틈바구니에 껴서 이것저것 사고 나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제 또 뭘 사야 하지?' 수첩을 뒤적이며 고민하고 있자니, 조기 살 때 만난 수산물 가게 사장님이 소리친다.

"아이고 이 아가씨, 뭐 사야 되는지도 몰라? 나물 샀어?"

"아 맞다, 삼색나물. 고맙습니다 하핫."

시금치는 채소가게에서 쉽게 볼 수 있었고, 가격은 국산 600g에 3천원이었다.

고사리와 도라지는 삶은 것을 판매하는데 고사리는 북한산 600g에 3천원, 도라지는 중국산 600g에 3천500원을 주고 살 수 있었다.

바로 옆에는 전과 식혜를 직접 만들어 파는 상점도 있다. 전 부치는 냄새가 솔솔 풍기지 않았더라면 차례상에 전을 빠뜨리는 중대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동그랑땡과 동태전은 사장님이 직접 부쳐 각각 600g당 6천원에 판매했고, 녹두빈대떡은 한 장에 4천원씩 팔았다.

이 집의 자랑거리는 식혜. 국산 쌀과 엿기름을 사용해 '할머니가 만들어준 맛'이 난다며 연신 자랑을 늘어놓기에 한 컵 마셔봤는데, 돌아다니느라 지쳤는지 식혜 한 컵이 꼭 꿀맛 같아 도저히 사지 않을 수 없었다.
1.5ℓ 한 병에 5천원, 500㎖ 한 병엔 2천원씩이다.

마지막으로 시장 내 작은 할인마트에 들러 차례주 700㎖ 한 병을 5천200원에 구매하는 것으로 '전통시장 추석 장보기' 미션을 마무리했다.

전통시장에서 추석 제수용품을 구매하는 데 들인 비용은 모두 24만1천700원.

물론 더운 날씨에 땀 뻘뻘 흘리며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는 게 쉽지는 않았다.

시식도 있고, 친절하고, 쾌적하기까지 한 집 앞 대형마트가 그리웠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원산지를 물어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려워 깐깐한 소비자 입장에선 대형마트가 조금 더 믿음이 가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시장의 좋은 점이라면, 역시나 '에누리'가 있다는 것.

대형마트보다도 싸게 산 것 같은데 이것저것 산다고 몇 천원을 더 깎아주기도 하고, 아쉬울까봐 덤이라도 한 개 더 얹어주는 푸근한 시장 인심은 대형마트에선 결코 느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지동시장은 오늘도 추석을 앞두고 제수용품 준비에 한창인 주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신선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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